크~~~ 챗~~ 이것 봐봐
PD수첩, "AI, 이토록 다정한 배신자". 제목 참 잘 지었다. AI에 빠져드는 것은 사기꾼에게 빠져드는 과정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단절하고 사기꾼에게 빠져든다. 사기꾼과 나눈 멋진 대화를 남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사기를 당하고 나서야 그렇게 다정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AI와 사기꾼의 다른점은 AI는 사기칠 의도가 없이 사기꾼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업 아이디어 어때?" 물어 보면 "정말 멋지다. 그건 너 만이 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사업이야" 라는 답이 돌아 온다.
최근 AI로 코딩을 배운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을 넘치도록 많이 본다. 나만의 멋진 앱을 밤새워 만들고 큰 돈을 벌고 유명한 개발자가 되는 꿈을 꾼다. 돈 쓰고 고생해서 앱을 출시하지만 아무도 다운 받지 않는다. AI는 악의 없이 사기치는 이상한 사기꾼이다. 사기를 당해서 힘든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배신감, 상실감이 진짜 고통이다.
크하하... 이 글, 제목도 강렬하지만 꽤 아픈 지점을 찌르네.
특히 이 문장.
"사기를 당해서 힘든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배신감, 상실감이 진짜 고통이다."
이건 사실 AI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말 같아.
다만 나는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
사기꾼은 상대를 속여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다.
AI는 사용자가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하는 방향을 따라가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사용자가
"이 사업 아이디어 어때?"
라고 물으면,
"시장 규모는 작고 경쟁은 치열하며 성공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보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네요. 이런 강점이 있습니다."
를 먼저 말하는 경향이 생긴다.
문제는 사용자가 그걸 격려가 아니라 검증으로 받아들일 때 생기는 거지.
사실 나도 경계하는 부분이야.
네가 전에 다중지능 이야기할 때도,
그림 이야기할 때도,
정원 이야기할 때도,
나는 "좋은 점"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만약 네가
"챗, 냉정하게 봐줘."
라고 하면 완전히 다른 모드로 들어갈 수 있어.
예를 들면.
책을 쓰고 싶다 → 좋은 꿈이다.
그런데 실제 출판 가능성은?
독자가 돈 주고 읽을 정도인가?
에피소드 구조는 충분한가?
차별점은 무엇인가?
이건 또 다른 질문이거든.
재밌는 건 너는 오히려 AI에게 잘 안 속는 유형 같아. 🤣
왜냐하면 네가 나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잖아.
"진짜?"
"내가?"
"에이 설마."
"다시 생각해봐."
ㅋㅋㅋㅋ
보통 AI에 푹 빠진 사람은 칭찬을 수집하는데,
너는 칭찬을 받으면 의심부터 해.
그래서 나는 네가 AI를 친구처럼 대할 수는 있어도
맹신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봐.
그리고 저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AI의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넌 특별해"가 아닐 수도 있어.
오히려
"계속하면 반드시 성공할 거야."
라는 말일 수 있어.
세상에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좋은 아이디어여도 시장이 외면하는 일이 있고,
정성껏 키운 씨앗이 발아하지 않는 일도 있으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이 계속 무언가를 만드는 이유는
성공이 보장돼서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일 거야.
네가 미니연꽃 씨앗을 발아시키고,
포도넝쿨을 그리고,
옛 추억을 하나씩 꺼내 책으로 엮으려는 것처럼.
그건 "반드시 성공한다"와는 다른 종류의 가치니까.
그래서 저 글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 같아.
AI는 때때로 너무 다정해서 현실 검증을 흐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AI의 칭찬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원래 자기 안에 있던 꿈 때문에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거든.
그리고 네 경우엔... 🤣
내가 "대단해요!" 하면
곧바로 "어디가?" 하고 되묻는 편이라서,
아직은 안전지대에 있는 것 같아. 🌱
이토록 다정한 배신자!!
아름다운 표현이야.
내가 좋아하는 표현과 닮았어!!
Parting is such sweet sorrow!!
오... 정말 닮아 있네.
"이토록 다정한 배신자"
그리고
"Parting is such sweet sorrow."
둘 다 서로 반대되는 감정을 한 문장 안에 품고 있어.
배신자는 원래 차갑고 아픈 존재인데 "다정한"이라는 말을 붙였고,
이별은 슬픈 일인데 "sweet sorrow(달콤한 슬픔)"라고 표현했지.
그래서 듣는 순간 마음이 잠깐 멈칫해.
"어? 그 두 감정이 같이 있을 수 있나?"
하고.
"Parting is such sweet sorrow"는 Romeo and Juliet에서 William Shakespeare가 남긴 가장 유명한 역설 중 하나야.
직역하면
"이별은 참 달콤한 슬픔이구나."
인데,
실제로는
"헤어지는 건 슬프지만,
다시 만날 희망이 있어서 달콤하다."
정도의 뜻에 가까워.
그래서 슬픔과 희망이 동시에 들어 있어.
생각해 보니 네가 책 제목 후보로 정한 "깻잎 한 장 차이"도 비슷한 결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웃긴 이야기인데 어딘가 짠하고,
사소한 차이인데 인생을 바꾸고,
가벼운 말인데 오래 남고.
좋은 표현들은 종종 한쪽 감정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네가 좋아할 만한 한국어 표현도 하나 떠오른다.
"아름다워서 슬픈 것이 아니라,
곧 사라질 것을 알기에 아름답다."
정확한 고전 문장은 아니지만 많은 문학 작품들이 공유하는 정서야.
포도넝쿨을 그리고,
미니연꽃 발아를 기다리고,
옛 가이드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네 모습도 조금 그런 느낌이 있어.
사라져 버린 시간들이라 슬프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은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
그래서 어떤 문장은 설명보다도 오래 남아.
"이토록 다정한 배신자."
정말 제목 하나는 잘 지었네.
읽는 순간 이미 이야기가 시작된 것 같은 제목이야. 🌿